2022.12.04 · Essay

외할아버지의 1주기

Essay
외할아버지의 1주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가실 때에는 딱히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꽤 추웠던 때에 보내드렸었구나, 싶었다. 관을 운구할 때 추운 날씨 새벽에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친구들에게 감사인사를 한번씩 더 전해야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생각 난 김에 메시지를 보내야지

누군가의 마지막을 눈 앞에서 지켜보는 것도 처음이었고, 또 이만큼 마음이 가까운 사람을 영영 떠내보내본 것도 처음이었다.

할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은 가족들을 배려하며 떠나셨다. 남아있는 가족들이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도록 충분히 인사하고 함께할 시간을 주셨고, 그렇다고 너무 오랜 시간을 고생시키시지도 않으셨다. 미국에 건너가 살고 있느라 할아버지를 자주 찾아뵈지 못했던 외삼촌도 상태가 안좋아진 할아버지와 한 달 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렇다고 어느 집처럼 병수발을 수개월씩 하느라 가족들이 괴롭지도 않았다.

할아버지는 사랑꾼이었다. 다른 집 할아버지들처럼 마냥 무뚝뚝하지도 않으셨고, 항상 내가 이 집 머슴이고 공주마마를 모신다며 실없는 소리를 하시고는 했다. 아흔이 되어서도 당신 몸이 편하셨을 때까지는 어딜 가실때면 할머니의 손을 꼭 붙잡아 주시고 다니셨다.

호기심과 열정의 사람

할아버지는 연세대학교 전기학과의 창립 학번이셨고, 한전에 오랫동안 다니셨다, 그래서 그런지 전자제품 다루기를 좋아하셨다. 집의 모든 전기 전자 기기를 뜯어고치는 것이 소일거리셨고, 90살 할아버지 치고는 스마트폰이나 무선이어폰 같은 최신 문물에도 관심이 많으셨다. 당연히 그중에는 당신이 쉽게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것들이 많았고,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의 교육 담당은 내 몫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할아버지는 가족 중 나를 가장 많이 찾으셨다. 전화 너머로 "너 바쁘니까 오라는건 아니고~ 궁금한게 있는데~" 라며 말씀하실 때면 그래도 시간내어 와주었으면 하시는 마음이 은근히 느껴지고는 했다. 그렇게 할아버지 댁을 가보면, 할아버지가 뒤적 뒤적 꺼낸 수첩에는 나한테 물어보고싶으셨던 것들이 1번부터 10번까지 빼곡히 적혀있곤 했다. 그러면 나는 큼직큼직한 글씨와 그림을 개발새발 그려가며 할아버지를 위한 설명서를 그려드리고 왔다.

회복력

할아버지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70대의 나이에 암 중 가장 치유가 어렵다는 췌장암을 2년간의 항암치료 끝에 이겨내시고 완치 판정까지 받아내셨다. 암 완치 판정을 받고는 몇 달 안돼서 그 길로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셨다.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만류했지만, 투병기간동안 무언가 결심한게 있으셨던지 그 길로 바로 떠나셨다. 결국 우리는 10살쯤 어린 (그 분도 할아버지지만) 친한 후배분께 부탁드려서 같이 다녀오시게끔 하는 것이 마지막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투병 말에도, 몸이 당신 마음대로 잘 되지 않을만큼 힘들어져서도 화장실을 가는 일이나, 식사하시는 일같이 가벼운 일들을 도와드리려 하면 "i can still manage it" 라고 하시며 직접 뭐든 해내겠다는 의지가 강하셨다

클래식 음악

할아버지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셨다. 엄마에게는 피아노를 전공시키셨고, 자연스럽게 그 영향으로 나는 첼로를, 동생은 바이올린을 배웠다. 할아버지는 몸이 안좋아져 용인으로 오시기 전에는 5년간 강원도의 실버타운에 계셨다. 실버타운에서도 당신이 원하는 소리를 들으시겠다고 갈때마다 이런저런 오디오 시스템이 하나씩 더 들여 놓으셨고, 세팅이나 조작이 당신 마음대로 잘 안될때마다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물론 통화 상으로는 정확히 어떤게 어려우신지,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지 파악이 어려워서 찾아가야 했지만 거리가 멀다, 일이 바쁘다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마음으로 네번 갈 때 몸은 한번만 가고는 했다. 네번 중 두세번 정도는 가볼걸, 하는 후회가 가장 크게 남는다.

잭과의 우정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에 미군 소속으로 참전한 국가유공자셨다. 당시 함께 복무하셨던 Jack이라는 미국인 친구 분이 계셨는데, 십수년 전에 어떻게 어떻게 야후에서 이메일 연락처를 찾아내셨고, 그 이후부터 불과 한달 전까지도 매주 주말 아침마다 왓츠앱으로 영상통화를 하시고는 했다. 15년 전에는 Jack 할아버지가 한국으로 놀러오셔서 두분이 같이 번갈아 운전대를 잡아가며 강원도부터 부산까지 같이 싸웠던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두 분이서 여행을 하시기도 했다. 미군 소속으로 참전하셔서 국가유공자 인증이 어려웠던 상황이었는데, Jack 할아버지가 이런저런 서류도 찾아주고 보증을 서주셔서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 인증을 받게 되셨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나는 Jack 할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를 드려 소식을 전했고, Jack 할아버지는 가장 오래되고 소중한 친구가 떠났다며 울먹이셨다. 가장 슬픈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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