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클의 종말
캐치테이블에 있을 때 계속 붙잡고 있던 고민이 하나 있었는데, 핫한 레스토랑 예약이 매번 새벽 광클 싸움이 되는 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는 거였음. 당시에 다이나믹 프라이싱이나 NFT 기반 멤버십 같은 방향을 이래저래 만져봤는데, 결국 "수요가 공급보다 압도적으로 클 때 한정된 자리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리고 모든 stakeholder가 가장 만족하는 최적해는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이었음.
최근에 AI 에이전트들이 본격적으로 일상에 들어오는 흐름을 보면서 이 고민이 다시 올라왔음. 왜냐면 에이전트가 보편화되면 광클 자체가 무의미해지니까. 모든 사람의 에이전트가 밀리세컨드 단위로 동시에 클릭하면 그건 그냥 랜덤 추첨이랑 다를 바 없음.
콘서트 티켓, 레스토랑 예약, 한정판 스니커즈, 수강신청까지 — 지금 "빨리 누르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로 돌아가는 시장들이 전부 배분 방식을 다시 설계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 같음.
스포티파이의 실험: 배드버니 도쿄 공연
그러던 중에 배드버니가 3월 도쿄 공연을 티켓 판매 없이 스포티파이 탑 리스너 초대제로 진행한다는 소식을 보게됨. Spotify Billions Club Live라는 시리즈인데, 일본 내 배드버니를 가장 많이 스트리밍한 팬들만 이메일 초대를 받는 방식임.
재밌는 건 이게 단순히 팬서비스가 아니라, 스포티파이 입장에서는 "우리 플랫폼에서 많이 들으면 이런 혜택이 있다"는 강력한 락인 시그널이라는 점임.
근데 이 모델의 한계도 명확한편. 배드버니를 진심으로 좋아하는데 애플뮤직 유저인 사람은? CD를 사고 굿즈를 모으는 팬인데 스트리밍 수치가 낮으면? 결국 "찐팬"이 아니라 "특정 플랫폼에서 측정 가능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걸러내는 것이고, 데이터를 쥔 플랫폼의 파워만 커지는 구조.
Verified Fan의 교훈
테일러 스위프트의 Verified Fan이 비슷한 시도를 먼저 했었음. Ticketmaster가 과거 구매 이력이나 SNS 활동으로 "자격자 풀"을 만들고 그 안에서 티켓을 판매하는 방식이었는데, Eras Tour 때 자격자가 너무 많아서 결국 또 서버가 터지는 대참사가 났음.
1차 필터가 충분히 좁지 않으면 2단계에서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는 걸 보여준 사례.
충성도 티어 + 다이나믹 프라이싱
그래서 내가 고민봤을 때에 결국 수렴하는 방향은 이 두 가지의 혼합임. 충성도로 자격 티어를 나누고, 티어별로 다른 가격 메커니즘을 적용하는 것. 탑 1%는 정가 구매권, 5%는 소폭 프리미엄, 그 아래는 다이나믹 프라이싱이나 옥션.
에이전트 시대에는 이 2단계가 훨씬 정교해질 수 있음. 에이전트가 "이 좌석, 이 날짜, 이 아티스트 조합이면 나는 최대 X원까지"라는 조건부 입찰을 자동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음.
새로운 문제들, 그리고 기회
물론 이러면 새로운 문제가 생김. 광클 봇이 사라지는 대신 충성도 파밍 봇이 등장할 거고, "당신은 20% 티어이므로 프리미엄입니다"라는 명시적 계층화에 대한 소비자 반발도 있을 것.
근데 어쨌든 "모두에게 동등한 기회"라는 광클의 환상은 에이전트가 깨뜨릴 수밖에 없고, 그 이후의 배분 설계는 모든 수요초과 시장의 공통 과제가 됨.
레스토랑, 콘서트, 스니커즈, 공모주까지 — 이런 수요초과 시장들은 각각 어떤 방식으로던 필연적으로 재설계될거고, 그 과정에서 분명 또 재미를 보는 플레이어가 나올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