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1 · AI

에이전트 시대의 수요초과 시장 — 2편: 중개자가 사라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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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 시대의 수요초과 시장 — 2편: 중개자가 사라진 자리

원래 연재할 글은 아니었는데 계속 막 생각이 나서 조금 더..

"찐팬"을 누가 증명하느냐의 문제

앞에 쓴 글에서 에이전트 시대에 광클이 무의미해지고, 충성도 + 가격 혼합 모델로 수렴할 거라는 얘기를 했음. 근데 글을 올리고 나서 계속 걸렸던 게 하나 있었는데, "충성도를 누가 측정하지?"의 문제였음.

배드버니 스포티파이 사례에서 "찐팬"의 기준은 결국 스포티파이 스트리밍 횟수였음. 근데 배드버니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애플뮤직 유저라면? 앨범을 CD로 사고 콘서트를 매번 가는 팬인데 스트리밍 수치가 낮으면? 결국 "찐팬"이 아니라 "특정 플랫폼이 측정할 수 있는 충성도"가 기준이 되는 거고, 이 구조에서는 데이터를 쥔 플랫폼의 파워만 계속 커짐.

앞에 쓴 글에서 내가 내린 결론도 사실 이 한계 안에 있었고.

크로스플랫폼 프로토콜? 안 됨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러면 플랫폼을 넘어서는 통합 프로토콜이 있으면 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음. 모든 스트리밍 플랫폼, 굿즈샵, 티켓팅 사이트가 하나의 표준에 참여해서 크로스플랫폼 팬 스코어를 만드는 것.

근데 이건 잠깐 슥 생각해보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음. 스포티파이가 왜 독점 데이터를 공개하나? 데이터가 곧 경쟁 우위인 플랫폼한테 다 같이 공유하자는 건 비교유위에 있는 플랫폼에게는 말도 안되는 제안일 것.

질문 자체를 바꾸기

근데 여기서 한 발 더 나가면 질문 자체가 바뀔 수 있음.

플랫폼을 설득할 필요가 애초에 없으면? 에이전트가 플랫폼이라는 중개자 자체를 우회해버리면?

지금 아티스트가 스포티파이에 음원을 올리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임. 유통(리스너에게 도달)과 디스커버리(새로운 리스너를 찾아줌). 그런데 에이전트 시대에 이 두 가지 모두 플랫폼 없이 가능해지기 시작함.

유통: A2A 직접 연결

유통부터 보면, 아티스트가 자기 음원을 직접 호스팅하고, 내 에이전트가 A2A(Agent-to-Agent) 프로토콜로 아티스트 측 에이전트에 직접 접속해서 스트리밍하거나 구매하는 구조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질 것 같음.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스포티파이에 내는 수수료 없이 리스너와 직접 거래하는 것.

이건 이론이 아니라, 이미 프로토콜 레벨에서 구현 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음.

디스커버리: 취향 유니온

"그래도 디스커버리는 플랫폼이 해야 하지 않냐"는 반론이 당연히 나올 수 있음. 이미 좋아하는 아티스트 음악은 에이전트가 직접 가져오면 되는데, 아직 모르는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건 다른 문제임. 지금 스포티파이의 진짜 해자가 바로 이 추천 알고리즘이고.

근데 이것도 에이전트 시대에는 다르게 풀릴 수 있음. 나랑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일종의 union을 만들고, 그 union에 속한 에이전트들끼리 서로 청취 데이터와 감상 맥락을 공유하는 것. 스포티파이의 "너랑 비슷한 유저들이 이거 들었어"를 탈중앙화된 취향 네트워크가 대신하는 셈인데, 오히려 이쪽이 더 풍부할 수 있음. 스포티파이는 스트리밍 데이터만 보지만, union 에이전트들은 콘서트 후기, 굿즈 구매, 감상 맥락까지 공유할 수 있으니까.

"근데 그러면 가짜 음원이나 사칭은 어떻게 검증하냐?", 이것도 에이전트가 실시간으로 할 수 있음. 지금도 Shazam이 몇 초 만에 음원 핑거프린팅을 하는데, 내 에이전트가 메타데이터 크로스체크하고 아티스트 신원 확인하는 건 더 쉬운 일임. 플랫폼이 대신 해주던 "품질 보증"을 소비자 에이전트가 직접 하는 것.

플랫폼 위가 아니라, 플랫폼을 대체하면서

이 논리를 따라가면 결론이 좀 과격해지는데..

플랫폼을 설득해서 데이터를 공유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플랫폼이 필요 없어지면서 데이터가 자연스럽게 크리에이터와 소비자 사이에서 직접 흐르게 되는 것. 크로스플랫폼 프로토콜이 "플랫폼 위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플랫폼을 대체하면서" 만들어지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음.

그리고 사실 이건 음악만의 얘기가 아니고 식당도 마찬가지임. 식당이 자기 에이전트를 갖고 있고, 내 에이전트가 직접 예약을 협상하면 예약 플랫폼이 왜 필요할까? 공연 티켓도, 한정판 스니커즈도 같은 구조가 적용됨. 결국 "수요 > 공급 시장의 배분 문제"는 "어떤 플랫폼이 배분을 더 잘하느냐"가 아니라 "배분을 중개하는 레이어 자체가 필요한가"로 질문이 바뀌게 됨.

도미노의 시작

물론 이 전체가 동시에 일어나진 않을 거라 생각함. 크리에이터의 자체 호스팅, A2A 프로토콜의 성숙, 에이전트 검증 능력, 취향 union의 형성, 이것들이 동시에 임계점을 넘어야 하는데, 각각의 타이밍이 다를 수밖에 없음. 그 전까지는 기존 플랫폼이 관성으로 버틸 것.

근데 전환이 올 때는 점진적이지 않을 것.

한 명의 메가 아티스트가 스포티파이를 떠나서 에이전트 직접 연결로 성공하는 순간, 도미노가 시작될 거라고 생각함. 최근의 메가급 아티스트들, 예를 들어 테일러, 배드버니, 빌리 아일리쉬, 비버까지 모두 진짜 좋은 말로는 자기 주관 단단하고 안좋은 말로는 남의말 드럽게 안듣는 스타일인데 아마 이 중 한명이 총대 메지 않을까, 테일러 스위프트가 2014년에 스포티파이에서 음원을 뺐을 때 업계가 뒤집어졌던 것처럼, 다음번에는 아예 플랫폼 바깥에서 새 판을 까는 아티스트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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