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31 · AI

에이전트 10개 돌리는 사람들, 그래서 뭘 만들었는데?

AIEssay
에이전트 10개 돌리는 사람들, 그래서 뭘 만들었는데?

평소처럼 또 새로 나온 AI 머시기가 뭐가 있나 하고 유튜브를 탐닉하다가 Paperclip이라는 서비스를 보게 됐다. 썸네일부터 벌써 자극적이다. AI 에이전트로 회사를 통째로 운영한다는 오픈소스 프레임워크, 모르면 개손해. CEO 에이전트를 만들고, 그 아래에 콘텐츠 매니저, 리서처, 스크립트 라이터를 배치하고, 작업을 던지면 파이프라인이 자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뉴스 리서처가 조사하고, 콘텐츠 매니저가 검토하고, 스크립트 라이터가 쓰고, SEO 에이전트가 마무리한다. 완전 자동. 게다가 무료. 일단 시각적으로 벌써 후킹한다.

그래서 관련해서 몇 개 영상을 찾아보다가 든 생각들.

세팅이 끝나면 남는 건 뭔가

Paperclip을 칭찬하는 영상들의 하이라이트는 대부분 "세팅 과정"이다. 에이전트를 고용하고, 조직도를 만들고, 파이프라인을 구성하는 그 과정 자체가 콘텐츠의 전부다. 실제로 이 시스템이 만들어낸 최종 결과물 — 고객이 보는 것, 돈이 되는 것 — 을 보여주는 영상은 하나도 없다.

어떤 영상에서는 "zero human company"를 자랑하면서 에이전트 4개를 돌리고 있었는데, 그중 3개가 하는 일이 대충 이렇다: 커뮤니티 플랫폼 리서치, 어드민 대시보드 UX 개선, 평가 파이프라인 안정화. 전부 일을 하기 위한 준비지, 일이 아니다. 외부에 뭔가를 실제로 내놓는 에이전트는 4개 중 1개뿐이었다.

TikTok 바이럴 영상을 에이전트로 만든다는 사람도 있었다. Paperclip이 트렌드 리서치하고, 스케줄링하고, 포스팅까지 한다고 자랑하는데, 본인도 인정한다 — "영상 퀄리티가 충분한지 모르겠다." 영상 퀄리티가 전부인 플랫폼에서, 퀄리티 외의 모든 것에 99%의 시간을 쓰고 있다. 병목은 도구가 아니라 본인인데, 도구를 더 쌓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는 문제.

인간 조직도를 AI에 씌우는 게으른 설계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Paperclip은 CEO → CMO → CTO → 하위 에이전트라는 인간 조직의 위계 구조를 그대로 AI에 씌운다. 인간이 이런 조직을 만드는 이유는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고, 커뮤니케이션 비용이 인원 수의 제곱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위계 구조는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보완하는 장치다.

AI에는 이 제약이 없다. 병렬 처리가 되고, 좁은 범위의 작업을 수천 배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AI CEO"가 지시를 내리는 구조는 AI의 강점을 살린 게 아니라, 인간에게 익숙한 은유를 입혀서 이해하기 쉽게 만든 것뿐이다.

근데 이건 Paperclip만의 문제가 아니다

Paperclip 얘기를 길게 했지만, 사실 내가 요즘 계속 하고 다니는 얘기가 결국 이것이다.

LinkedIn이나 Threads를 열면 꼭 보이는 유형의 포스트가 있다. 터미널 3개 띄워놓고 에이전트가 동시에 돌아가는 스크린샷, 그 위에 "My AI team just autonomously completed a full content pipeline" 같은 캡션. 좋아요 수백 개, 댓글은 "AI" 달아주시면 툴 공유해드릴게요. "AI" "AI" "AI" "AI".

누군가는 새벽 2시에 터미널 3개 띄워놓고 "Hermes 위에 Paperclip 올리고 Whisper로 Telegram 연동했다"고 쓴다. 읽는 사람 대부분은 내용을 이해 못 하지만 일단 그럴듯하고 대단해 보인다. 복잡해 보이는 것과 가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데, 이 둘이 자꾸 뒤섞인다.

"Setup Porn"이라는 장르

이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setup porn"이다. 도구를 세팅하는 행위 자체에서 생산성의 쾌감을 느끼는 현상. Notion에 완벽한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적는 것과 본질이 같다. 근데 멀티에이전트 셋업은 Notion보다 한 단계 더 교묘하다. 기술적 복잡성이 성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장르에는 바이럴이라는 강력한 인센티브가 있다. "에이전트 10개로 회사 운영" 같은 제목은 클릭을 부른다. 유튜버든 뉴스레터 운영자든, 새로운 에이전트 프레임워크가 나올 때마다 실제보다 더 크게 포장할 동기가 있다.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가 "이게 미래다"라는 합의에 참여하는 게 이득이니까. 그 과정에서 "그래서 뭘 만들었는데?"라는 질문은 분위기를 깨는 민폐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도구에 취하면, 도구가 나를 쓴다

내가 일하면서 겪었던 가장 똑똑하다고 느꼈던 사람은 개인 노트테이킹을 모두 삼성 노트로 했다. 나는 동 시기에 Notion이랑 Readwise, Workflowy를 같이 쓰고 있었다. 지금은 기억 안 나지만 아마 두어 개 더 썼었던 것 같다. 이 사람에게 도구가 문제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에이전트 자체가 쓸모없다는 말이 아니다. 나도 매일 에이전트를 쓴다. 근데 에이전트가 진짜로 폭발적으로 유용한 건, "뭘 시킬지"를 내가 정확히 알고 있을 때다. 맥락과 제약 조건을 정밀하게 넣어주면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그 판단이 없으면 아무리 화려한 프레임워크도 그냥 비싼 마크다운 showoff에 불과하다.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개념 자체는 분명히 미래의 방향이다. 근데 지금 이걸 둘러싼 담론의 대부분은 셋업의 멋짐에 취해서 정작 중요한 질문을 건너뛰고 있다고 생각한다. 움직임은 많은데 이동은 없는 상태. A lot of motion, but not a lot of movement.

도구에 취하면, 도구가 나를 쓰기 시작한다. 주화입마에 빠지지 말자. Impact first thinking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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